🩷 '사미의 할말있음!'은 혼삶레터 앞으로 도착한 사미의 사연을 전하는 코너예요. 자취와 관련된 고민이나 궁금증부터 내 혼삶 자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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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좀 지친 건지ㅠ 요즘 삶이 너무 힘들어요. 몇 년 동안 스터디다 동호회다 뭐다 진짜 바쁘게, 열심히 살았는데 얼마 전부터 좀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이렇게 살아도 체감되는 변화가 크지 않아서 조금 현타가 왔달까... 제가 덜 열심히 해서 그런 걸까요?
코로나19를 거치며 청년들 사이에선 갓생 바람이 불었죠. 혼삶레터에서도 꽤나 자주 등장했던 단어 중 하나인데요.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겠지만, 갓생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신을 뜻하는 단어 '갓(God)'과 삶을 뜻하는 한자 '생(生)'을 조합한 신조어예요. 주로 생산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실천할 때 '갓생살기'로 표현하곤 합니다.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갓생을 검색해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갓생을 추구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드문드문 갓생으로 인한 번아웃을 호소하는 분들도 찾을 수 있었어요. 오늘 사연을 보내준 담벼락 사미처럼요.
열심히 산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지치는 걸까요?
욜로(YOLO)를 기억하나요?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라는 표현의 줄임말로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충분히 즐기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소위 '요즘 것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단어로 꼽혔죠. 이와 함께 플렉스(FLEX) 문화가 MZ세대의 주 소비 경향으로 떠오르기도 했고요.
하지만 2020년 무렵부터 갓생의 등장으로 욜로와 플렉스의 시대는 지게됩니다.
서울연구원이 뉴스와 블로그, SNS 등 모든 콘텐츠에서 갓생의 언급량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2020년부터 갓생이 유행어로 등장하며 1년여 만에 욜로와 플렉스의 언급량을 초월했어요.
ⓒ서울연구원
갓생 언급량은 2020년 27만여 건에서 2022년 64만여 건으로 두 배 이상 뛰어올랐죠. 반면 욜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20만여 건 수준을 기록하다가 갓생 등장 이후 언급량이 서서히 줄어 2022년에는 10만여 건으로 감소했어요.
플렉스의 언급량은 2019년 14만여 건에서 2020년 34만여 건으로 대폭 증가했지만, 욜로와 마찬가지로 갓생의 등장 후 언급량이 서서히 줄어 2022년에는 20만여 건으로 대폭 감소했죠.
갓생이 등장한 2020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갓생이란 단어가 왜 유행했는지도 알 수 있겠죠?
2020년은 코로나19 여파가 가장 컸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외출, 타인과의 만남 등이 모두 제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커졌을 때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었고요.
커져가는 무기력함과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이 찾은 것이 바로 갓생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성취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불안을 달랠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됐지만, 갓생살기의 열풍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엔데믹으로의 전환이 이뤄진 이후로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사미는 갓생이라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서울연구원이 2022년 네이버 블로그에서 갓생이 언급된 콘텐츠 2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블로그, 일기, 챌린지, 목표, 행복 등의 단어가 연관으로 검색됐대요.
주목할 점은 행복이라는 키워드인데요. 연구원은 청년들이 일상생활에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함으로써 얻게되는 행복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갓생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공부와 운동이었어요. 그리고 공부·운동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시간이었고요. 특히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의 2022년 언급량은 83만 건을 기록했대요.
이외에도 미라클모닝(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운동 등 자기계발을 하는 것), 카공(카페에서 공부), 무지출챌린지(일정 기간 한 푼도 안 쓰는 무소비에 도전하는 것),
N잡러(생계유지를 위한 본업 외에도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이 갓생 관련 키워드로 꼽혔어요.
ⓒ코바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지난해 전국 20~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50.5%가 갓생이란 단어를 알고 있었어요. 특히 갓생 개념 인지율은 20대에서 79.5%로 가장 높았습니다.
ⓒ코바코
갓생을 살기 위해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들의 41.6%는 '(재테크·업무 관련 공부 등)자기개발'을 꼽았어요.
그외 갓생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로는 재테크(37.3%), 주기적인 운동(37.2%), 건강한 식습관 유지(28.8%) 등이 언급됐고요.
갓생을 실천하기 위해 금액을 지출하거나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도 72.9%에 달했죠. 특히 51%는 10만원 이상을 지출할 수 있다고 답했어요.
누구나 생산적인 삶을 사는 사회. 언뜻 들어선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갓생과 함께 번아웃이 떠오르고 있거든요. 번아웃은 지나친 업무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느끼고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말해요. 일종의 만성 무기력증인 거죠.
최근 서점을 가본 사미라면 아마 어느 정도는 공감할 거예요. 베스트셀러 코너만 살펴봐도 미라클모닝의 기적을 이야기하는 책과 쉬어가도 된다고 말하는 책이 나란히 놓여 있으니까요.
갓생과 번아웃. 언뜻 보기에 두 단어는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쉼없이 달리기만 해서는 쉽게 지칠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잖아요.
돌이켜 보면, 너도나도 갓생을 외치는 사회 분위기 속엔 '쉬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분초 단위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다는 조급함에 내몰리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 문제는 갓생의 기준이 몇 가지의 키워드들로 정형화 됐다는 거예요. 이를 테면 미라클모닝, 해빗트래커, 명상, 오운완 이런 것들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소소한 목표'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일례로 미라클모닝의 경우, 전문가들은 무리해서 따라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요. 체질상 미라클모닝이 몸에 맞지 않는 이들도 있어서인데요. 이런 사람들은 수면 부족으로 인해 오히려 자기계발 활동을 충실히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다 끝내 실패를 경험한 이들은 어떨까요? 더 큰 좌절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겠죠. 혹은 정형화된 갓생의 틀에 나를 억지로 욱여 넣느라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고요.
앞서 코로나19 시기 무기력함을 달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갓생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런데 갓생으로 또 다른 무기력함과 직면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최근 떠오르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걍생입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호흡으로 그냥 살겠다는 의미예요. 남들과 똑같은 속도가 아닌 내 페이스에 맞춰 가끔은 뛰기도 가끔은 걷기도 하겠다는 거죠.
제이미 배런 작가는 자신의 저서 '과부하 인간: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을 통해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기이한 자기계발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계발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닌 치유력이며, 쟁취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는 성공이 아닌 만족이라고 말이죠.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너무 애쓰기를 멈출 때, 비로소 인생이 당신을 위해 얼마나 아름답게 펼쳐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얼마나 귀중한 사람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귀중한 당신에게 꼭 맞는 인생이 펼쳐질 테니까 말이다.
제이미 배런 <과부하 인간> 중에서
물론 갓생살기를 통해 성장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분들이라면 걱정할 것 없죠.
하지만 갓생을 살아내느라 오히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 분들이라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한 학기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한 학생들이 당연한 방학을 맞이하는 것처럼요.
사연을 보내준 담벼락 사미의 스레드에 달린 댓글을 소개하며 오늘의 혼삶레터를 마무리할게요.
요즘 너무 더워서 저도 아무것도 하기 싫네요 ㅎㅎ 저는 좀 무기력하게 살려고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도 너무 더워서 좀 컨디션도 좋지 않고 늘어지더라고요ㅠ 글쓰니분 너무 달리기만 하시다 안하시니까 불안해서 그러신 것 같은데! 좀 쉬어 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휴가도 다녀오시고! 카페같은 시원한 곳 가서 노닥노닥도 하시고 하세요 ㅎㅎㅎ
힘들면 좀 누워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저도 한때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뭐라도 계속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내려놓고 나니까 오히려 삶이 좀 더 윤택해지더라고요~ㅎㅎ
오늘 사연에 공감하거나 조언을 더해주고 싶은 사미들은 담벼락으로 찾아와 주세요💚